행 사 사 진

걸 어 온 길

: 마테오리치가 쓴 천주실의
: 관리자 : 2020-7-29 (수) pm 12:23 : 59 : 1
     마태오 리치(Matteo Ricci)선교사의『천주실의(天主實義)』

  중국선교의 아버지라 할 이는 마테오 리치 선교사이다. 1552년 10월 6일, 이탈리아의 도시 마체라타에서 13남매의 장남으로 출생한 마테오(Matteo)는 세례명이다. 부친인 요한 리치는 마체라타의 시장을 지냈으며, 후에 주지사의 지위에까지 이른 인물이다. 마테오 리치는 어려서부터 가정교사로부터 배웠으며, 가정교사인 니콜로 벤치베니는 후에 개혁적인 예수회에 입회하여 리치에게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1571년 (19세) 예수회에 입회하여, 로마의 예수회 수련원에 들어가 수도생활을 한 후 선교사로 1582년 (30세) 중국의 마카오에 도착했다. 명나라 말기에 중국에 들어 온 이탈리아으로 선교를 위해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의 사제급인 승려와 같은 격으로 어필하기 위해 삭발하고 승복을 착용하고 전도생활을 시작하였다. 유교의 경전인 사서(四書)를 라틴어로 번역하고,『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라는 세계지도까지 만들었다. 그뿐 아니라 기독교를 중국에 전하기 위해 유교를 공부하여 유교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유학자들의 한계를 찾아내 기독교를 그 대안으로 제시하는데 성공했다. 
  그가 중국 선비와 서양 선비에 대해 자신과의 대화 형식을 빌어 저술한 『천주실의(天主實義)』는 극희귀한 기독교 서적이다. 이 책의 제목처럼 『천주실의(天主實義)』는 ‘하나님에 대한 참된 토론’이라는 뜻이며, 두 권으로 구성된 이첵은 8편 174항목으로 되어 있고, 1603년『천주실의(天主實義)』를 중국 북경에서 처음 간행하였다. 이후 선교사들에 의해 1868년 거듭 출판되었다.
  마테오 리치 선교사는 중국에서 중국인을 대상으로, 동양사회에 대한 기독교 전파가 목적이었으므로, 유교적 교양을 바탕으로 기독교 교리를 설득하는 방식이다. 필요한 경우 불교와 도교 이념도 동원하였고, 중국의 고사(古事)와 성어(成語)를 적절히 이용하였다. 
  내용을 살펴보면, 1편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인간의 인식, 2편은 불교·도교에 대한 논박과 상제(上帝) 개념 등 기독교 수용의 기반이 되는 유교적 성격에 대한 설명, 3편은 천국(天國)의 필요성과 식물·동물·인간의 특성을, 4편은 인간 영혼의 신령함과 범신론적 일신론(汎神論的一神論)에 대한 비판을, 5편은 윤회설 등 불교에 대한 비판과 그리스도교의 재계(齋戒)의 성격을, 6편은 죽은 후의 상벌(賞罰)과 지옥·천국에 대한 설명을, 7편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귀결되는 인간의 본성을, 8편은 기독교 신앙생활과 상통하는 중국 고대의 생활과 기독교에 귀의하여야 할 당위성을 논하였다. 
  그렇게 하므로 기독교는 ‘서교(西敎)’,'서학(西學)'이라는 이름으로 중국과 조선의 유학자들에게 큰 관심거리였다. 이로 인하여 기독교를 반대하였던 조선의 유학자들조차 기독교를 접하게 된다.
『천주실의(天主實義)』는 중국의 지식인들뿐 아니라, 조선의 지식인들이 서학, 즉 기독교(천주교)를 수용 신앙운동으로 발전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맡았다. 
  조선후기 대표적 유학자로『성호사설』을 저술한 이익(李瀷)은『천주실의(天主實義)』를 읽고 “그 학문은 오로지 천주(天主)만을 위하는데 '천주'란 곧 유가(儒家)의 '상제(上帝)'이다”라고 '상제'와 '천주'를 같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천주실의(天主實義)』의 내용은 1614년 선조 때 지봉(芝峰) 이수광이 쓴『芝峰類設』에 실리면서 조선학자들에게 전해져 이익, 안정복, 다산 정약용, 이승훈 으로 이어지는 신앙인들을 배출하며 기독교의 기초를 놓는데 기여했다.  
  기독교(천주교), 즉 서학이 유교와 불교사상이 굳건한 조선에 뿌리를 내린 것은 인조 때이다. 숙종 때에는 교세를 자못 떨쳤으며 영.정조 때에는 황해. 강원. 경기. 충청. 전라 등 각처에 성행했다. 특히 영조시대에는 전성기를 맞아 이익(李瀷)을 중심한 서학연구는 그의 제자와 문하생들에게 확산되어 ‘조선서학’이란 학문체계가 수립됐고, 조선후기 실학형성의 중요한 줄기가 되었다. 당시 사회불안 속에서 서학사상은 지식층에게 새로운 개혁의식의 확대와 봉건사회에 대한 개혁의식의 자극제 역할을 감당하였다.
  특히 1866년 (고종 3년 )부터 1871년 (고종 8년 )까지 이어진 한국 최대의 신앙박해사건인 병인박해와 특히 중국의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은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자국의 문화를 자국의 국민들이 있는 대로 부수고 태워 없앤 전례 없는 대사건으로,『천주실의(天主實義)』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신앙서적은 두 사건을 통해 소실되었다. 그래서 박물관들도 이때의 영인 복사본을 간신히 구해 전시할 정도로 극희귀본이다.
무궁화 그림
일제 강점기 무궁화 자수
제주도 이기풍 선교기념관 앞 무궁화 나무
이사장 정연철 목사
다산중앙교회 캠페인 장면

 

 

 

강연하는 이효상  원장
cts기독교텔레비전 강연

 

      












국민일보
CTS
아이굿뉴스
CBS기독교방송
종교교회
신촌성결교회
소망교회
새문안교회
선한목자교회
분당우리교회

Contact us:saintree2001@daum.net
CopyRight ⓒ 2004 - 2020 All Rights Reserved By 한국교회 건강연구원